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시와라 간지 (문단 편집) == 세계최종전쟁론이란? == ||[[파일:external/imageframe.kr/m_27_world.jpg|width=300]]|| || 국내에 출간된 세계최종전쟁론[br][[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036|간단한 내용은 굽시니스트의 소개 만화를 참고하자]] || 그럼 과연 이런 짓거리를 하면서까지 대비해야 하는 '세계최종전'은 무엇일까. 이시와라가 상상한 세계최종전쟁은[* 아이러니 하게도 이 세계최종전쟁론은 훗날 [[적군파]]에게 영향을 준다. 역시 [[극과 극은 통한다]]] [[총력전]]이며, 단기전이다. 그는 병기의 발달로 전쟁기간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 보았다. 국지전이나 전초전은 여럿 있겠지만 [[핵전쟁|전면전은 단기간에 끝난다]]고 주장했다. 일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대학에 진학한 엘리트 군인 출신인 이시와라 간지는 세계 전쟁사를 연구하고 분석해서, 전쟁의 양상을 지구전(소모전)과 단기 결전이 반복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 상태(제2차 대전)은 소모전이지만, 멀지 않아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단기 최종전이 발생하리라 예견했다. [[러일전쟁]]에서는 기껏해야 [[기관총]]과 [[대포]] 정도였지만, 1차대전이 되자 항공기, [[독가스]], [[잠수함]], [[전차]]가 등장했다. 무기의 파괴력은 나날이 진화해 언젠가는 [[핵무기|대도시나 나라 자체도 한방에 부숴버릴]] '''결전 병기'''가 등장할 것이라 주장했다. 당연히 '결전 병기'는 산업력과 과학력이 우월한 국가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부유한 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시와라가 육군 중장, [[교토]] 제16사단장으로 재직할 1940년 4월 29일 당시 〈세계최종전론〉이란 강연을 하고 강연 내용을 출판했다. 그는 [[나치 독일]]이 [[프랑스 침공]]을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로 독일의 과학력을 언급했다. >연합군 측은, 몇 년 전 독일이 라인 진주를 결행했을 때 프랑스가 베르사유 조약을 근거로 독일에 대해 일격을 가하자고 주장했으나 영국이 이에 반대했고, 그 후에도 작전 계획에 있어 시시때때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프랑스의 전의는 제1차 유럽대전만 못했고, 마지노 선 연장도 계획에 머물렀을 뿐 거의 구축되지 못했다고 한다. >---- >이시와라 간지, 세계최종전쟁론, 제6절 제2차 유럽대전 31쪽. 그리고 이시와라 간지는 저서인 세계최종전쟁론에서 상기한 문장을 근거로 물질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거국일치를 이루는 것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수인 요소라고 주장했다. 화학 공업의 발달로 합성 석유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독일은 다시 세계 전쟁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라 주장하며, 앞으로 30년 후 다가올 세계최종전쟁을 대비해서 일본도 첨단 과학 무기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재래식 항공기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습니다. 자유롭게 성층권에서도 행동할 수 있는 근사한 항공기[* 항공기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미사일을 통해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를 빨리 만들어 내야 합니다. 또한 단숨에 적에게 섬멸적 타격을 줄 수 있는 [[핵무기|결전 병기]]가 나와야 합니다… >(중략) >…파괴도 단순한 파괴가 아닙니다. 최후의 대결승전에서 [[세계정복|'''세계의 인구는 절반이 될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세계는 하나가 됩니다''']]…그런 놀라운 과학의 시대에는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4/04/08/0608000000AKR20140408080700009.HTML|물이나 공기 같은 단순하고 무진장한 원료]]로 [[물질재조합장치|온갖 물자가 다 생산]]될 수 있게 되므로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의 구별이 없어집니다. [[제4차 산업혁명|놀랄만한 산업혁명]]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척척 만들어 내게 됩니다. '''결국 이시와라 간지는 군대에서 잘리고 만다.''' 단, 퇴역 당한 것은 비단 사상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시와라 간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관동군]]을 주축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만주]]를 충분히 공업화한 다음에 중국 침략을 수행해야 계획이 틀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사와라 간지는 이에 반대하다가 육군성 대신이던 [[도조 히데키]]의 미움을 사서 퇴역당하게 된 것이다. 다분히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이런 인사조치에 [[육군대학교]]동기였던 당시 육군성 차관 [[아나미 고레치카]] 중장이 항의하다가 도조한테 학을 떼고 차관직을 그만두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